오래도록 달려오고도 그 한걸음 한 걸음을 짎음에 지침도 소홀함도 없는 작품이 있습니다. 십수년 전 처음에는 역사책 속에서나 볼 법했던 이름들이 생생히 되살아나 예쁜 얼굴들 보이는 것이 마냥 신기했지요. 그 이름들이 독자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지금은 바로 옆에 있는 것만 같은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제는 제가 이들보다 더 빨리 늙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책으로 모양새를 갖춰 찾아 온 바람의 나라. 23권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무휼과 호동의 갈등이겠습니다. 계속 이야기 되어 왔던 부자간의 살이 이토록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던 적은 없었네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낙랑을 치기 위해 자신을 정략결혼에 내어 놓은 호동 왕자는 낙랑 땅에 머무는 동안 끝없이 갈등하고 번민합니다. 애초의 목적, 낙랑을 쳐야 할 명분에서부터 그는 흔들립니다. 주변의 상황이 흘러가는 방향,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진 그는 그의 이상과 아버지 무휼이 지향하는 바의 차이를 정면으로 대면하고 깨닫습니다만.
.......피에 물들어....
너덜너덜해지는 날개야...
침몰하는 꿈아.
내 황금빛 새야...
그것은 이미 예전서부터 대두되어 온 갈등. 무휼은 이미 인지하고 있던 바입니다.
그래서 너의 부도는 하늘에, 나의 부도는 땅 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부자가 가진 살이며,
나의 갈등이고,
그 진정한 의미이다.
하늘은 너무 높고 땅 위에서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면, 하늘의 뜻을 읽으면서도 인간에게 길을 보여주어야 하는 왕에게 있어 하늘 뜻만을 꿈꾸는 왕자란 얼마나 철없이 보이기 그지없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 아들의 이상이 애초에 인간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리킴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늘로 가는 날개를 가진
큰 새가 너의 것이고
하늘이 너를 통해
아직 세상에 남겨둔 것이 그것이라면
그러나 마냥 그 길을 독려할 수 없는 왕은 아들에게 고합니다.
네가 꿈을 접어라.
네가 너의 부도를 덮어라.
그게 옳다.
그러하다....
너는 너무 이르게,
혹은 너무 늦게 세상에 왔다.
그렇지 아니하냐?
인간이 땅 위에 살게 되고 한 인간과 다른 한 인간이 만나고 점차 무리를 이루고
나라를 세우고 번성하고 혹은 멸망하는 것의 경이로움과 무상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땅 위에서 만 갈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갔을 옛날의 그 누군가들. 당시의 고구려는 약소국이었고 이상을 펼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힘을 얻어야 했던 시기입니다. 하나의 나라를 이끌고 이상을 좇아가는 것이 당연 수월할 리는 없었겠지요. 그리고 그 원동력은 무엇이 되었건 시작은 긍휼한 마음이었을 거라, 무휼이란 이름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직 상상을 통해서만이 이미 지난 과거를 되불러 올 수 있다면 이 작품이 그려가는 세계의 한 사람 한사람의 표정과 말 한 마디 마디는 분명 정성을 다한 선물입니다. 그랬기에 오랫 동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랑받아 왔었겠지요. 그리고 여전히 이 세계는 변함없이 유유히 움직이며 고유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똑같이 작품내에서 부도로 이름지어진 하늘을 향하는 이상과 땅을 굽어보는 이상. 어느 쪽도 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양립하기도 힘든 것. 바람의 나라에 부는 바람은 칼로 베어도 베이지 않는 하늘과 땅 사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수많은 마음들이 토해 낸 숨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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